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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리버 여행기 - 그 지독한 풍자...
    잡동사니 2010. 6. 22. 00:24

    고등학교 때,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접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책을 구할 수가 없어서, 기한 채 잊고 있다가, 몇 해 전에 서점에 들렀다 우연히 접하게 된 책 – 걸리버 여행기

    어린 시절, 동화로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 소인국과 거인국에 표류하게 된 걸리버가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접하고서 제일 놀란 부분이 소인국, 거인국 이외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 하늘의 떠다니는 섬, 그리고, 인간과 말의 신분이 뒤바뀐 섬나라의 이야기가 추가 되어 있었다.

    , 어린 시절과는 다른 관점에서 책을 볼 수 있게 되어서인지, 그 시절 동화로 접했던 걸리버 여행기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을 접하게 되어, 이 책을 접하는 동안 계속 혼란에 빠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오랜 기간 국내에서 반공서적으로 둔갑하여 널리 읽힌 바 있듯, 그동안 어린이 명작동화 버전으로만 삭제, 편집된 채 소개 되었던 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영국 사회, 정치, 과학등의 전 분야에 대한 풍자를 담았던 소설이었다.

    앞의 두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지만, 간략히 각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걸리버는 배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된 후
    , 키가 10cm안팎인 소인들에게 잡히고, 전혀 말도 통하지 않던 소인국 사람들과 점차 친분을 가지게 되어, 전쟁준비에 혈안 중이던 이웃나라의 함대를 무력화 시키는 한 편, 궁궐 내에 큰 불이 났을 때는 한 걸음에 달려가 화재를 진압하는 등 소인국의 영웅이 된다.

    그런데, 걸리버는 궁전에서 벌어지는 왕과 각료들 간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욕심과 질투로 일종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자기 몸을 건사하기 위해 이웃 소인국으로 망명한 후 다시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쫓겨나가다시피 하게 된다.

    걸리버가 잠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후 다시 배를 타고 나갔다가 표류하게 되는 곳은 ‘브롭딩나그’라 불리는 거인국이다. 소인국에서와 달리 거인국의 한 농부에게 붙잡힌 걸리버는 일종의 서커스 유랑단의 구경거리로 전락하여 힘들게 살아가던 중, 거인국 왕비의 눈에 띄어 그때부터는 격조 높은 왕궁생활을 시작하다가 불행히 독수리에 낚여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온다.

    걸리버가 거인국의 왕궁 생활 중에, 편한한 생활에 대한 보답으로, 왕에게 영국의 발달한 무기 제조술을 가르쳐주려 한다. 하지만 “적국이나 경쟁국이 없는” 대인국의 왕은 그 생각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총포의 비밀을 아느니 “차라리 왕국의 절반을 잃겠다”고 대꾸한다.

    이 다음은, 걸리버가 해적들에게 배를 뺏긴 후, 어느 섬에 표류하다가 하늘을 나는 섬나라 라푸타(LAPUTA)에 구조되어서의 이야기이다. 이곳에서도, 많은 해괴망측한 일들이 유쾌하게 묘사되지만 역시 빠지지 않는 것은 걸리버의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자기반성적 환멸과 조롱이다.

    특히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글룹둡드리브’라는 마법사의 섬에서는 역사에 기록된 온갖 훌륭한 사람들이란 사실 자신의 탐욕으로 남의 공적을 자기가 한 것처럼 빼돌리고, 그 사실을 알만 한 사람들은 제거해버리는 그야말로 불한당들의 세계사에 불과했다고 고백한다. 게다가 당시 17세기 유럽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던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간접적 언급은, 오늘 날 아인슈타인에 의해 인력의 법칙이 폐기되어진 현실을 감안했을 때, 풍자를 넘어선 일종의 예언에 가깝다고도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의 나라는, 걸리버의 인간에 대한 비판의 채찍질이 극단적인 형태를 띠는 장이라 하겠다. 보통의 인간에서 소인의 관점으로, 다시 거인의 관점으로, 그리고 문명인의 관점에서 비교 언급되던 인간상은 말이 지배하는 ‘후이님’의 나라에서는 동물의 관점으로 시선이 옮겨지며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인간으로 격하된다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걸리버는 처음에는 인간(야후)이 수레를 끌고, (후이님)이 인간을 사육하는 광경에 놀라지만 말들의 군더더기 없는 선에 대한 가르침에 감명을 받고, 그곳의 추하디 추한 야후가 실제 유럽의 인간들보다는 차라리 선량하고 고결하다는 생각에 남은 생을 그곳에서 말의 종으로써 행복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다른 말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혐오스러운 인간세계로 다시 쫓겨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온 걸리버는 그동안의 여행을 회고하며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성의 지배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후이님들은, 내가 다리나 팔이 하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오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지닌 훌륭한 덕성에 대해 오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 다리나 팔이 하나라도 없다면 누구든지 비참해지겠지만, 사지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돌아다닌다면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내가 오만이라는 이 문제에 관해서 더욱더 곰곰 생각해보는 이유는 야후들이 사는 영국 사회가 더 이상 퇴보하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만이라는 이 어리석은 악덕을 조금이라도 지닌 사람은 감히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말기를 이 자리에서 간청하는 바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동화가 아니다 . 이미 내용요약을 통해 보았듯이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그 풍자가 너무 무겁다. 꿈과 희망을 주기는커녕 그동안 인간이 저지른 악덕과 오만의 파노라마를 들추며 충격과 공포를 줄 가능성이 높은 책이다. 이 책은 인간 세계에 대한 삐딱한, 혹은 냉정한 시각을 바탕으로 사뭇 깊이 있는 정치관과 인간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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